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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Édouard Manet: 마네 <올랭피아> 예술인가 포르노인가

이전 포스팅에서 모네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이번엔 마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 둘의 이름이 헷갈리신다구요? 다들 한번쯤 그렇습니다 걱정마세요. 간단히 말해서 마네는 모네보다 선배였고, 인물화에 좀 더 강했습니다. 그리고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려한 모네와는 달리 마네는 실내(스튜디오)를 선호했습니다.

마네, <올랭피아>, 1863
마네의 <올랭피아>입니다. 이 작품의 모델은 빅토린 뫼랑 (Victorine Meurent) 라는 코르티잔(courtesan)입니다. 코르티잔이란 르네상스 시대의 '고급 기생'을 일컫는 말로, 부자들의 유희 상대였죠. 그 중에서도 빅토린은 프랑스 황제인 나폴레옹 3세의 정부로, 마네가 가장 즐겨 그리던 모델이었습니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

마네는 그녀가 보통의 매음녀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가 어릴 적에 우피치 미술관에서 따라 그렸던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차용합니다. 구도로 보나 자세로 보나 마네의 <올랭피아>를 본 전문가들은 이 작품을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여인 또한 티치아노 시대의 유명한 창부였다고 합니다. 화가들은 고급 창부를 모델로 삼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놀랄 일은 아니지요.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비슷하게 그려진 <올랭피아>의 보석이나 커튼, 인테리어 등이 마네의 빅토린을 르네상스 시대로 데려갑니다. 하지만 <우르비노의 비너스>와는 달리 <올랭피노>는 지나치게 노골적이며 창부 그대로의 모습이 느껴진다는 거센 비난을 받게됩니다.

예를 들면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손을 오므리고 숨기는 듯한 포즈를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올랭피아>에는 모델의 손이 그림 정중앙에 "더럽고","두꺼비와 같은 모습으로" 관찰자의 눈을 잡아끕니다. (과격하죠? 제 표현이 아니고 T. J. Clark의 묘사입니다.) 이것은 매우 적극적인 유혹의 제스쳐로 보이며, 당시 남자들이라면 눈살을 찌푸릴만한 행동이었죠. 하지만 혹자들은 <우리비노의 비너스>에서 손가락이 안으로 접혀있는 것은 수음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오히려 이쪽이 더 에로틱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또 <우르비노>에는 출산능력과 정절을 상징하는 작은 강아지가 발치에서 잠자고 있는 반면, <올랭피노> 발치의 검은 고양이는 성적인 이미지일 뿐더러 프랑스어로 '고양이'와 비슷한 발음의 'chatte'는 창부를 다르게 부르는 단어인 'cocotte'와 형태가 비슷합니다.

더욱이 <올랭피아>는 정면을 똑바로 쳐다보며 관찰자의 시선에 당당하게 맞섭니다. 마치 '나는 창부이긴 하지만 당신은 내 선택을 받아야만 해!'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주지 않나요? 여성보다 우위에 있어야만 만족을 느꼈던 그 시대의 남자들은 올랭피아가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당시에 쏟아진 비난과 야유는 상상을 초월했지만, 현대에 와서 <올랭피아>는 피카소, 뒤뷔페를 포함한 많은 작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패러디되고 있으니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토요일

Claude Monet: 모네, 사랑을 그리다. (반전 주의)

지금 본다빈치 뮤지엄에서 모네 빛을 그리다: 두번째 이야기 전시가 있다고하여 써보는 모네 포스팅입니다. (전시기간은 2017년 7월 7일부터 2017년 10월 29일까지입니다.)

모네, <산책>, 1875
여인이 양산을 들고 언덕 위에 서있습니다. 꼬마아이는 뒤쪽에서 물끄러미 화가쪽을 바라보고있네요. 공기중 빛의 움직임이나, 드레스의 반짝임 등이 세밀하게 표현되어서 그림 그릴 당시의 따듯하고 행복했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그림 속 여인은 모네의 아내 '카미유'이고 꼬마는 아들인 '장'입니다. 카미유는 모네가 무명의 화가로 돈을 벌지 못하고 살림이 힘들었던 시기에도 그를 격려해준 현모양처였습니다. 모네를 위해 어떤 연출이라도 최선을 다해주었던 그녀는 슬프게도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말기 자궁암이었던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모네, <양산을 든 여인>, 1886

이후에 모네가 그린 그림 중에 위 그림과 매우 유사한 작품이 있는데, 유명한 <양산을 든 여인>입니다. 이 그림의 모델은 두번째 부인 알리스의 딸 '수잔'으로, 모네의 의붓딸입니다. 수잔은 카미유가 떠난 뒤 모네의 모델이 되어줍니다. 부인을 모델로 한 <산책> (1875)에는 얼굴이 비교적 자세히 묘사되어 있고 시선은 올곧이 화가를 향하고 있는 반면, 수잔을 그린 <양산을 든 여인>(1886)에서는 얼굴의 생김새가 생략되었으며 시선은 멀리 왼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이는 모네가 후기로 갈수록 대상의 구체적인 형태를 생략한 경향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왠지 저는 모네가 카미유를 떠올리며 <양산을 쓴 여인>을 그렸는데, 흐릿해진 기억으로인해 얼굴을 자세히 그리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굳이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비슷한 구도와 자세로 <산책>을 그리고자 한것은 카미유가 살아있었던 시기를 그리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보면, 먼 곳을 바라보며 서있는 여인과 바람에 흩날리는 드레스 자락이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반전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로맨틱한 이야기로 끝맺고 싶으시면 이 부분을 읽지않는게 좋아요. 1870년대 후반 프랑스는 불경기였고, 모네의 화상이 파산하여 도망가고 그의 부인인 알리스가 아이들을 데리고 모네의 집으로 오게 됩니다. 소문에 의하면 알리스와 모네는 이후 불륜관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번 더 반전이 있습니다. 알리스의 딸 '블랑슈'는 이후 모네의 큰아들 '장'과 결혼합니다. 족보가 복잡해지네요.

수요일

Edgar degas: 드가는 여성혐오자였다?

드가, <푸른옷을 입은 발레리나> (1890)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푸른옷을 입은 발레리나> (1890)입니다. 드가의 발레리나 연작들 중에서도 후기에 속하는 작품이죠. 그림에서 묻어나오는 색감이 너무나 부드럽고 서정적이라서 파스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유화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맨 앞에 서있는 소녀가 토슈즈를 신은 발 끝을 세워보고 있는 모습인데요, 금방이라도 그 발끝으로 자그마한 몸을 세워 빙그르르 돌 것 같은 기분이 들게합니다. 드가는 포즈를 취한 발레리나들이 아니라 자유롭게 연습하는 발레리나들의 모습을 포착하여 순간의 아름다움을 스냅사진처럼 남겼습니다.

드가, <개의 노래> (1875)

하지만 이전 드가의 작품들은 여성혐오적인 면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핏보면 우아한 여인을 그린듯한 위 작품의 제목은 <개의 노래> (1875) 입니다. 여인을 개에 비유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여성을 어떻게 보았는지 알 수 있죠. 드가의 여성 혐오는 그의 아름다운 어머니가 드가의 삼촌과 불륜관계였던 사실에 기인한다고 추측되기도 합니다. 사실 당시에 발레리나들은 생계를 위해 성매매를 하는 일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런것도 초기에 드가가 발레리나를 그림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중 하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탈의실에 있는 발레리나>에서 나타나듯이 보통은 들여다 볼 수 없는 탈의실이라는 공간속의 발레리나를 그림으로써 그녀를 완전히 관음증 해소의 대상으로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푸른옷을 입은 발레리나>에서 느껴지듯이 후기로 갈수록 이런 성향이 조금씩 사라집니다. 이건 혹시 그가 미국 태생의 여류 인상주의 화가 메리 카사트와 우정을 쌓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볼수 있습니다. 카사트의 그림 실력은 당대 최고의 여류화가 모리조 (마네와 특별한 사이였던 그녀)보다 좀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녀를 그린 작품 말고는 드가가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그린적이 없다고 하니 그가 카사트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드가의 영향이었는지, 카사트도 발레와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이 둘 사이의 애틋함은 분명히 느껴지는데 가정을 꾸리지 못했던 이유는 드가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이었다고 추측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