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Louis Lawler: 재해석의 사진가, 루이스 롤러

보통 우리가 유명한 미술품을 만나는 것은 그것들이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하얀 벽위에 전시되어 있을 때고, 집안에 그들을 걸어놨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100억짜리 제프 쿤스의 <토끼>가, 소유자 저택의 냉장고 옆에 놓여있을 때 어떤 모습인지, 또는 부유한 여인이 자신이 소유한 피카소의 조각을 마음대로 손에 쥐고있는 모습이 어떨지 선뜻 그려지지 않는다.

여기서 루이스 롤러(Louis Lawler)라는 여류 사진가가 등장한다. 그녀는 사진가였으며 동시에 큐레이터, 포토 에디터이기도 했다. 롤러는 사진을 찍기위해 작품들을 마음대로 배열하고, 콜렉터들의 집을 방문하며, 옥션하우스를 찾아간다.

루이스 롤러, Pollock and Tureen, Arranged by Mr. and Mrs. Burton Tremaine, Connecticut, 1984
잭슨 폴락의 작품이 수프를 담는 큰 그릇을 놓은 선반위에 걸려있는 모습이다. 롤러는 자주 이렇게 사진에 오렌지빛이 돌도록 찍어서 더욱 옛날 느낌이 나도록 하거나, 따듯하고 다정한 느낌이 들도록 하곤 한다.

미술사학자 Ann Goldstein은 롤러의 이러한 '사용'은 빌리거나 훔친다는 개념이 아니며 독창성이 없기 때문도 아니라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Craig Owens는 이러한 사용은 후기 모더니즘의 페미니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루이스 롤러는 저작권과 예술가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재미있게 요리해낸다. 그녀는 자주 과도하게 포장되곤 하는 예술가의 처음 의도를 무시하고, 미술 기관들 사이의 벽을 무너뜨린다. 예를 들면 Jasper Johns가 자신의 작품이 어느집 침실에 걸리기보다 유명 미술관에 가기를 원했었는지 그런것은 로울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현재 작품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 위치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가 그녀에게는 더 중요했다.

롤러는 미술품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다양한 시대와 상황에 따라 여러 방향에서 재해석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art is always a collaboration with what came before you and what comes after you"라고 말함으로 예술가들은 홀로 창작해내는 자들이 아니라 과거 그리고 미래의 작품들과 협력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녀 자신 또한 이런 태도로 사진 작품을 찍었다.

루이스 롤러, <Statue before Painting>, 1982
이 사진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중앙동 발코니에서 찍혔다. 앞쪽에 찍힌 것은 Canova의 조각으로,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있는 페르세우스의 모습인데 로울러는 사진 프레임을 그의 페니스에서 잘라버렸다. 다분히 의도적인 연출로, 미술사에서 남성들이 주를 차지하고 있는 점에 대한 의견 표출이었다.

관찰자가 그녀의 사진 속에 있는 물건들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을수록 롤러의 사진은 한층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대상이 무엇인지, 사진 속 작품은 얼마인지, 또는 장소가 어디인지 등 어떤 정보라도 도움이 된다. (사실 어떤 작품이든 공부하고 다시 보면 더 많이 보인다. 알면서 나는 왜 안하는것인지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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