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 <올랭피아>, 1863 |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 |
마네는 그녀가 보통의 매음녀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가 어릴 적에 우피치 미술관에서 따라 그렸던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차용합니다. 구도로 보나 자세로 보나 마네의 <올랭피아>를 본 전문가들은 이 작품을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여인 또한 티치아노 시대의 유명한 창부였다고 합니다. 화가들은 고급 창부를 모델로 삼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놀랄 일은 아니지요.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비슷하게 그려진 <올랭피아>의 보석이나 커튼, 인테리어 등이 마네의 빅토린을 르네상스 시대로 데려갑니다. 하지만 <우르비노의 비너스>와는 달리 <올랭피노>는 지나치게 노골적이며 창부 그대로의 모습이 느껴진다는 거센 비난을 받게됩니다.
예를 들면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손을 오므리고 숨기는 듯한 포즈를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올랭피아>에는 모델의 손이 그림 정중앙에 "더럽고","두꺼비와 같은 모습으로" 관찰자의 눈을 잡아끕니다. (과격하죠? 제 표현이 아니고 T. J. Clark의 묘사입니다.) 이것은 매우 적극적인 유혹의 제스쳐로 보이며, 당시 남자들이라면 눈살을 찌푸릴만한 행동이었죠. 하지만 혹자들은 <우리비노의 비너스>에서 손가락이 안으로 접혀있는 것은 수음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오히려 이쪽이 더 에로틱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또 <우르비노>에는 출산능력과 정절을 상징하는 작은 강아지가 발치에서 잠자고 있는 반면, <올랭피노> 발치의 검은 고양이는 성적인 이미지일 뿐더러 프랑스어로 '고양이'와 비슷한 발음의 'chatte'는 창부를 다르게 부르는 단어인 'cocotte'와 형태가 비슷합니다.
더욱이 <올랭피아>는 정면을 똑바로 쳐다보며 관찰자의 시선에 당당하게 맞섭니다. 마치 '나는 창부이긴 하지만 당신은 내 선택을 받아야만 해!'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주지 않나요? 여성보다 우위에 있어야만 만족을 느꼈던 그 시대의 남자들은 올랭피아가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당시에 쏟아진 비난과 야유는 상상을 초월했지만, 현대에 와서 <올랭피아>는 피카소, 뒤뷔페를 포함한 많은 작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패러디되고 있으니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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