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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관의 기능: 대중에게 다가가는 미술관

미술관의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시점은 근대적 공공기관으로서 미술관의 역할이 증대되기 시작한 18세기 중반부터이다. 이전까지 왕과 귀족들의 유일한 권한이었던 예술작품들을 수집하거나 감상하는 행위를 대중들에게 공개하게 되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기 때문이다. 1789년 발생한 프랑스 혁명은 현대적 의미의 미술관 성립과정에 있어서 큰 의미가 있다. 그 당시 혁명정부는 왕궁의 모든 소장품을 루브르 궁에 옮겨 일반에게 공개했는데, 그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모든 문화예술품의 공공화라는 이념이었다. 소수보다는 사회 전반의 다수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공공성을 부각시키며 대중에게 다가가는 미술관의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새로운 차원의 미술관 정책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미술관은 이미 생산된 작품들을 전시하고 보관하는 공간에서 나아가 대중들을 위한 문화 창출의 공간으로서 더욱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현재에 와서는 미술관들이 수장작품의 공급과잉으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비판하며 미술관이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미술관학'이 등장했다. 새로운 미술관학은 주변 미술관과의 관계성 부족으로 예술작품의 보관창고 역할밖에 못한다고 지적한다.

과거의 작품 수집과 보관에서 벗어나서, 한마디로 미술관의 존재 의의를 사물이 아닌 사람에 두고 미술관을 사회봉사를 위한 교육적 도구로 개념확대 시키는 것이다. 즉 미술관이 이제 예술품의 공동묘지에서 벗어나서 대중에게 복합 문화를 보급하는 하나의 장소로 기능해야한다는 것이다.

예 1. 퐁피두센터
퐁피두 센터는 건물 내부 전체가 기둥이나 고정된 벽에 제한받지 않아 작품설치를 위한 간이벽이나 각종 구조물들을 자유롭게 설치/분해 가능하다. 퐁피두는 개장당시부터 '시민을 위해 개방된 자유로운 공간' 이라는 개념하에 센터를 중심으로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문화시설을 계획했다. 브랑쿠지 전영 전시관, 현대음악센터, 생메리 성당, 라 퐁텐 이노성트 분수, 남쪽으로는 파리시청과 노트르담 대서당이 퐁피두 주변에 위치해있다. 또 1985년에는 마래 지역에 있던 호텔을 개조하여 피카소 미술관으로 재개관하여 주변 여러 갤러리들과 함께 보브르-마래 지역을 연결한 문화지역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예 2. 테이트 모던
영국은 런던 테이트 갤러리가 1897년부터 자체적으로 다양한 미술전시를 열어오고 있었지만 소장품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건축하게 된다.  (2000년에 테이트 갤러리는 테이트 모던과 테이트 브리튼으로 양분화 되었다.)

테이트 모던이 위치한 사우스워크 지역은 대중의 입장을 고려하며 도시 전체의 균형있는 발전 또한 꾀했다. 예를 들어 개발 당시 강을 남북으로 마주보는 생폴 성당과 테이트모던을 연결하는 보행자를 위한 다리를 건설하여, 도시 중심과 미술관이 직접 연결됨과 동시에 방문객이 산책하는 기분으로 자연스럽게 전시공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미술관 옆에는 셰익스피어 극장, 디자인 뮤지엄 등이 위치하여 강을 따라 새로운 문화지역을 형성하려는 의도 또한 엿볼 수 있다.

미술관을 둘러싼 환경부터 도시 전체의 환경까지 고려하여 도시 자체를 하나의 문화지역으로 자리매김 시키려는 영국의 정책적 의지에서 프랑스 퐁피두 센터와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현대미술관은 독자적 정책 뿐 아니라 주변지역과의 유기적 관계를 고려한 종합적 정책을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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