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Centre Pompidou: 퐁피두센터, 복합문화공간의 새로운 지평

퐁피두센터의 위치는 파리 4구의 보부르 광장이다. 이 곳은 1936년에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가옥들을 철거하여 퐁피두 건설 논의 당시에는 매우 황량한 분위기의 공터로 남아있던 곳이었다. 디자인공모에는 전 세계에서 500개가 넘는 설계도가 제출되었는데, 신진 건축가였던 렌조 피아노와 리차드 로져스가 공동 설계한 디자인이 뽑히게 된다.


건물 착공은 1972년에 시작되긴 했으나, "기능적이고 유연하며 다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평가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이 디자인이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 중의 하나인 주위 환경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단절될 것이라는 비판이 가장 거셌다. 골조와 각종 튜브들이 밖으로 나온 것에대해 대중이 갖는 거부감이 컸던 탓에, 이 건물은 '기계괴물'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이에 당시 도쿄궁에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을 퐁피두센터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마티스, 샤갈, 피카소, 브라크 등의 소유자들이 '기계괴물'로의 작품 이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 새로운 센터가 전통적인 미술관의 진지함이나 안정성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엄숙한 분위기가 흐르는 루브르나 오르셰와는 다르게, 퐁피두센터는 전통적인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을 거스르고 '민족주의적 자긍심'이라는 이념을 깨고자했다. 말하자면 우상파괴적인 개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복합문화주의'라는 이념이 자리하는데, 이는 문화정체성의 차별성을 공존시키고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다는 맥락이다. 즉 이전의 중심논리를 해체하고 새로운 인식의 틀을 만들려는 노력이다.

지금에 와서는 퐁피두센터가 파리의 과감한 미적 감수성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새로운 미학의 중심은 '열려있음'의 개념을 근간으로, 모든 문화와 예술 그리고 대중에게 열려있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고 인정받는다.

퐁피두센터는 내용적으로도 앞서 말했던 복합문화주의적 시각에 근거하여 행사들을 주관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더니즘 시기의 서구중심주의적 시각에 대한 반성과, 60년대 이후 '타자'에 대한 관심과 존중으로 시작된 복합문화주의는 문화의 '차이'와 '공존'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진보적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문화를 발견하고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결국 서구적인 시각에 의존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런 점에서 또 하나의 서구권력 확산이라는 비판도 있다.

예를 들어 1986년에 있었던 '일본의 아방가르드 (Le Japon des Avant-Gardes)'전의 경우, 1910-70년대의 일본현대미술을 순전히 서구현대미술의 조류에 따라 분류해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다른 사례로는 처음으로 비서구 및 제3세계의 현대미술과 민속예술을 모아 전시한 1989년의 '대지의 마술사 (Les Magiciens de la Terre)'전이 있다. 서구와 비서구 출신 미술가들의 비중을 절반씩으로 하여 동시대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는 복합문화주의적 시각이 긍정적으로 반영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역시 식민주의적 시각에서 비서구 미술을 바라보았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서구 미술의 형식적 차용과 추상화 트랜드에 맞서고자 한 결과, 비서구 미술 고유의 진품성과 아우라, 샤머니즘, 페티시즘적 특징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식민지적 시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지의 마술사'전에 참여한 바바라 크루거는 <누가 대지의 마술가들인가?>에서 의사? 정치인? 작가? 무기 판매상? 농부? 영화배우? 라는 텍스트를 통해 전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퐁피두센터는 '예술의 탈신비화'의 한 사례로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건물이다. 퐁피두센터의 대중화 성공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외부적으로는 일단 건축양식에 있어서 개방적이라는 점과 내부에 영화관, 카페테리아, 도서관 등의 시설을 갖춘 복합시스템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을 위한 전시장과 수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었으며 홍보 전략 또한 탁월하다. 예를 들어 퐁피두는 오픈시간이 낮 12시부터 밤 10시까지로, 낮에 일하는 직장인들도 퇴근 후에 여유있게 방문이 가능하다.

물론, 실제로 사람들을 '오게만' 하는 것과, 그들로 하여금 '보게'하는 것은 사실 다른 차원의 것이다. 좋은 전시와 프로그램들이 뒷받침되어야 일회성 방문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콘텐츠를 즐기러 올 것이다. 퐁피두는 연극, 문학, 음악 등의 다양한 장르가 모이는 복합문화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행사나 출판물이 내용과 과정이 고도의 전문성을 띄어 개관 이후 1억 50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